맛과 영양, 정성 가득한 김치로 전하는 어머니 사랑
파란 하늘 아래, 울긋불긋 물든 산이 그림 같은 경치를 자아내는 고궁의 가을. 화성행궁 광장에도 주홍빛 두건과 앞치마를 두른 사람들로 마치 단풍이 든 듯한 진풍경이 펼쳐졌다. 맛있는 김장으로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의 겨울나기를 돕고자, 삼삼오오 모인 위러브유 회원들의 모습이다.
11월 6일, (사)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 (재)국제위러브유가 주최한 ‘제16회 어머니 사랑의 김장 나누기’가 수원시 화성행궁 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위러브유 장길자 회장과 이사진, 300여 명의 회원이 참석해 따뜻한 마음을 나눴다. 박래헌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 김기정 수원시의원을 비롯해 가수 이승훈, 윤태규, 배우 최예진 등 각계 인사들도 함께 김치를 담그며 정성을 보탰다.
회원들은 작업대에 미리 절여놓은 배추를 진열하고 포장 상자를 준비하며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쌀쌀한 아침 바람이 잦아들 즈음, 따사로운 가을볕 아래 더욱 노란 빛을 자랑하는 알찬 배추들이 김치로 변신할(?) 준비를 마쳤다. 배추밭을 방불케 하는 광경에 행인들이 멈춰 서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한쪽에 마련된 패널 전시도 화성행궁을 찾은 외국인들과 시민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오전 10시 30분, 본격적인 김장이 시작됐다. 장길자 회장을 비롯해 자원봉사자들은 배춧잎을 한 장 한 장 들추며 20여 가지 국내산 농수산물로 만든 김칫소를 꼼꼼히 채워 넣었다. 직접 재료 포대를 나르며 적극적으로 동참한 가수 윤태규 씨는 “매년 기다리는 행사다. 많은 분과 사랑을 나눌 수 있어 보람이 크다”며 활짝 웃었다.
한국에 산 지 8년째로 김치는 좋아하지만 김장은 처음 해본다는 네팔인 주부 룹 마야 구룽 회원은 “네 살인 딸도 김치를 좋아하는데, 딸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김치를 담가 보려고 한다”며 수줍게 말했다. 행사 전날 설레는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러시아인 주부 아이귤 마가디예바 회원은 “한국은 정과 사랑이 있는 나라다. 한국에 와서 좋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받은 도움을 이웃과 나누겠다고 다짐했다. 권경자(50, 수원 송죽동) 회원은 “받으시는 분들이 김치에서 어머니의 손맛을 느꼈으면 좋겠고, 우리가 늘 곁에서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푸근한 마음으로 겨울을 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장을 마친 장길자 회장은 패널을 통해 내빈들에게 한국의 김치와 김장문화, 위러브유의 ‘어머니 사랑의 김장 나누기’ 행사를 소개하면서, 김치를 전해주며 만난 독거노인들의 사정을 자세히 들려주기도 했다. “회원들이 정성껏 담근 김치를 한번 드신 분들은 다음 해에 또 기다리셔요.” 위러브유의 ‘어머니 사랑의 김장 나누기’가 십수 년간 계속되는 이유다.
갓 담근 김치는 곧바로 10킬로그램씩 깔끔히 포장됐다. 맛깔스러운 김치를 본 외국인 관광객들이 행사장을 찾아 시식하기도 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엄지손가락을 세우는 모습에 회원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호주에서 온 미드하트 압델마지드 씨는 “한국의 전통과 역사를 보러 고궁을 찾았는데, 마침 김장 행사를 하기에 걸음을 멈췄다. 김치로 어려운 이웃을 돕다니 한국의 나눔 문화가 정말 멋지다”고 말했다. 행사에 함께한 박래헌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외국인들도 많이 다녀가는 세계문화유산인 화성 앞에서 우리 전통인 김장을 함께 하니 자연스러운 축제 분위기가 형성되고 더욱 뜻깊다”며 김치에 담긴 사랑이 이웃들에게 잘 전해지지기를 바랐다.
이날 총 8000킬로그램 분량의 김장이 수원, 성남, 용인, 화성에 거주하는 이웃 800세대에 전달됐다. 해당 지자체 관계자들은 “어려운 분들에게는 김장이 다른 무엇보다도 소중한 선물이자 사랑”이라며 “도움이 필요한 곳은 많은데, 각계각층의 김장 지원은 물량이 부족한 실정이다. 앞으로도 이런 뜻깊은 행사를 계속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행사가 끝나고 참가자들을 격려한 장길자 회장의 행보는 수원시 화서동의 이웃들에게로 이어졌다. 독거노인 가정과, 뇌출혈로 쓰러진 노모를 돌보는 50대 여성가장 가정을 찾은 장 회장은 “회원들이 몸에 좋은 여러 재료로 정성껏 담근, 보약 같은 김치”라며 갓 담근 김치를 선물했다. 쌀, 이불과 난방비, 위로의 말을 함께 건네며 장길자 회장은 다가오는 겨울에도 이웃들이 건강하고 따뜻하게 지내길 기원했다.
싱싱한 배추와 양념, 정성으로 우린 육수, 다양한 젓갈…. 다채로운 재료가 어우러질 때 김치는 깊고 풍부한 맛을 낸다. 이날, 위러브유의 김장은 여기에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이라는 특별한 재료를 더했다. 춥고 외롭게 겨울을 보내는 이 없이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