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믿음으로
4월 16일 진도 인근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 침몰. 이후 시간이 멈춘 사람들이 있다. 300명이 넘는 실종자들이 발생하자 그 가족들은 사고 해역과 가까운 진도로 달려갔다. 이때부터 진도군실내체육관에서는 끝 모를 슬픔과 정처 없는 기다림이 시작됐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믿음으로, 희생자 가족들의 슬픔을 나누고자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가 나섰다. 광주와 인근 지역 회원들은 체육관 앞마당에 무료급식캠프를 설치하고 4월 21일부터 실종자 가족들과 자원봉사자, 실종자 수색과 사고 수습에 힘쓰는 관계자들을 위해 급식봉사를 시작했다.
체육관 정문 앞과 내부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에 시시각각 보도되는 관련 뉴스에 실종자 가족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체육관 옆 공설운동장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희생자들을 수송하는 헬리콥터가 이륙과 착륙을 반복했다. 실종자들의 신원이 확인될 때마다 체육관 한편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생존의 희망은 사라지고 시신이나마 돌아오기를 바라는 가족들에게 음식을 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회원들은 조금이라도 식사를 하고 기운 내기를 바라며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음식 준비와 급식봉사에 정성을 다했다.
“자식 키우는 같은 부모 입장에서 저도 마음이 이리 아픈데 그 마음이 오죽하겠어요. 와서 보니 그분들의 아픔이 피부로 느껴져요. 어떤 말로도 위로가 안 되겠지만 이런 봉사로나마 힘내시라고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어요.”
집에서 세월호 참사 소식을 TV로 볼 때마다 안타까움에 눈물짓던 회원들은 가족들과 직장 동료들의 지원을 받아 가사 일과 직장 일을 잠깐씩 접고 교대로 봉사했다. 모처럼 휴가를 낸 직장인 회원들은 자정부터 이튿날 자정까지 거의 24시간 꼬박 캠프에서 봉사하기도 했다. 전날 장을 본 재료로 이른 새벽부터 식사를 준비하는 빡빡한 일정보다, 실종자 가족들의 초췌한 모습에 마음이 더욱 고됐다. 그들에게 웃음도 보일 수 없고, 눈물도 더더욱 보일 수 없었다.
가족이 상심과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뭐라도 먹여 힘을 내게 하려는 ‘어머니 마음’으로 회원들은 최선을 다했다. 소화가 잘되고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되는 식단을 짜고, 곡기를 끊다시피 하고 있는 가족들을 위해서 죽을 쑤고 보약을 달여 실내체육관 안으로 가져갔다. 차디찬 바닥 위에 매트와 이불을 가져다 놓고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가족을 기다리는 그들에게 위러브유 회원들이 전한 것은 죽과 보약, 따뜻한 물수건과 마음이었다.
더 필요한 것이 없나 살피던 회원들은 체육관 내 공기가 탁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손걸레를 챙겨와 안방을 닦듯 쪼그리고 앉아 체육관 바닥 청소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걸레가 금방 새까매졌지만 매일같이 세 번씩 청소를 하자 실내가 청결해지고 공기도 훨씬 맑아졌다. 나중에는 다른 봉사단체에서도 실내 청소 봉사에 한마음으로 동참했다.
저녁 식사를 제공한 후에도 회원들은 분주했다. 쌀쌀한 날씨에 경계근무를 하고 있는 의경들에게 핫팩을 나눠주기도 하고, 팽목항에서 실종자들의 귀환을 기다리다 한밤중에 돌아오는 가족들에게 라면을 대접하는 등 새벽까지 위러브유 급식캠프에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친척들의 손에 이끌려 마지 못해 한 술 뜨러 나왔던 실종자 가족들은 식사를 하며 조금씩 기력을 찾고 차츰 회원들에게 마음을 열었다. 부산에서 왔다는 노부부는 20일 동안 아들을 찾지 못해 거의 식사를 못했다며, 위러브유에서 정성껏 대접해주어 기운을 차리게 됐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체육관을 청소하는 회원들에게 몇몇 가족들은 자신들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이 죄인처럼 무릎을 꿇고 청소를 한다면서 미안해하고 고마워했다. 할머니 한 분은 “모두 아이들이 있는 엄마들 같은데 이렇게 와서 도와주니 눈물 나게 고맙다”고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봉사를 진심으로 해주는 것이 느껴진다”, “우리를 위해 24시간을 봉사해주니 정말 고맙고 든든하다”는 이들도 있었다.
실종자 가족들의 “맛있다”는 한마디, 회원들의 정성을 봐서 한 술이라도 뜨려는 모습에 회원들은 더욱 고마움을 느꼈다. 5월 4일에는 장길자 회장이 직접 진도에 내려가 현장을 둘러보고 위러브유 급식캠프에 들러 회원들을 손잡아 격려하기도 했다.
5월 9일까지 19일간 약 13000인분의 식사를 제공했던 위러브유 무료급식캠프는 실종자 가족 수가 줄어 철수해달라는 관계당국의 요청으로 봉사일정을 마쳤다. 함께했던 자원봉사자들도, 기자들과 관계 공무원들도 회원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캠프에 들른 실종자 가족들은 체육관 안에 있던 다른 가족들도 데리고 나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가족을 잃은 그들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 된 위러브유 회원들은 재회를 기약하며 다들 힘내기를 당부했다.